B 2018. 5. 13. 00:01

Pixiv 시노부(シノブ)님의 고레츠 소설인 춘하추동의 번역본입니다.

주인장이 정독할 요량으로 개인적으로 번역하던 것을, 시노부님의 허락 하에 블로그에 게재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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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는 원문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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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트위터에서 썼던 어른 고레츠가 뭔가 춘하추동과 이어지는 것 같아서.

전체적으로 츠바사군 미안해 시리즈입니다. 좀 어두운 이야기나 소위 어른의 관계를 받아들일수 있는 분만 부탁해요. 진단메이커의 "이 서두/끝맺음 어때요?"를 이용했습니다.










 

 

 

봄비가 나를 적신다. 투명한 빗방울은 투명한 우산 위를 흘러 발언저리에 떨어져 튀어서는 발을 싸늘하게 적셨다. 비닐우산 밑에서 내밀어본 하늘은 온통 엷은 회빛깔. 흐리지만 빛나는 것처럼도 보이는 그 하늘에서, 봄치고는 굵은 물방울 무리가 기분 좋은 리듬을 타며 몇 번이고 겹쳐져 내려온다. 이따금 빗방울에 섞여 뚝, 뚝 연분홍빛 꽃잎이 내려앉아서, 그게 투명한 비닐우산에 달라붙어 말린꽃처럼 보이는 모습을 어딘가 멍한 기분으로 오래도록 바라보고 있었다.

 

봄은 내게 있어선 결의의 계절로, 그리고 이별의 준비를 위한 계절이기도 했다. 그로부터 몇 년을 돌아서도 줄곧, 봄부터 여름에 걸쳐서는 어딘가 감상적인, 그리고 뒤숭숭한 기분이 된다. 예를 들어 이제 곧 졸업을 맞게 될 다 낡은 란도셀을 등에 멘 초등학생이라 부르기에는 커다란 아이들을 보거나, 본가 근처 학군의 중학교의 신입생으로 보이는 교복차림의 아이들을 보거나 할 때는 특히.

 

 

레츠 형

 

 

벚나무 옆에서 하늘을 바라보고 있던 내 뒤로, 약한 딱딱한 인상을 받는 동생의 목소리가 들렸다. 뒤돌아보자 고는 조금 실망한 얼굴을 하고 있다. 대체 뭐가 맘에 안 든다는 거야.

 

갑자기 어디 가버리니까. 뭐 보는 거야?”

중학생 애들이 있었어. 신입생인가? 교복도 헐렁헐렁하고.”

그런 거 아닌가? 중학생이 뭐가 어쨌는데?”

아니. 아무 것도 아냐.”

 

 

그렇게 말하고 우산을 팍 접자, 고가 뭐 하는 거냐고 말하고 싶은 듯이 제 우산을 내밀어 왔다. 짙은 파란색의 커다란 우산. 여전히 쏟아지는 빗방울은 나를 흠뻑 적시지 않는 채로 그 우산에 가로막혔다. 이 우산 아래라면 하늘도 벚꽃도 시야에 들어오지 않는다. 그에 까닭도 없이 한숨 돌린 기분이 된다.

 

 

, 여기까지 차타고 온 거야?”

아니 걸어서. 형도 걸어서 왔잖아.”

, 그러게

 

 

! 하고 다시 비닐우산을 펼쳐 가볍게 물방울을 털고 걷기 시작했다. 대체 뭐야 하고 투덜대는 걸 들으며 보폭을 맞춰 고의 옆을 걸었다. , 아무것도 아니야. 이 시기엔 좀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될 뿐이야. 여기로 막 돌아왔을 때는 맞춰줄 생각도 없었던 보폭을 어느 샌가부터 자연스럽게 맞추게 된 거라던가, 그때 저 교복을 입고 이렇게 둘이서 걸었다면 어떤 기분이었을까 싶은 거라던가, 이대로 미국에 비하면 융통성이라곤 없는 일본의 조직에서, 언제까지 연구를 계속하고 싶다 생각할 수 있을까 라던가.

 

맘대로, 어디 가지 마. 고의 목소리는 여전히 딱딱하다. 어린아이 같은 감정을 슬쩍 비친 그 목소리에 나는 쓰게 웃었다. 아주 조금의 미안함과 그리움과 사랑스러움이, 봄의 조용한 비처럼 촉촉하게 마음에 찼다.











여름

 

 

 

새파란 하늘에, 환상처럼 하얀 달이 둥실 떠있다. 이 시기는 기류가 안정되어있어서 달의 크레이터가 매우 선명하게 보인다. 여름 아침의 하현달이 일 년 중에 가장 아름답다 하는 사람도 있을 정도로, 남쪽 하늘 높이를 건너는 하늘의 배는 아름답게 빛나 보이는 것이었다.

 

시각은 530. 해가 뜬 지 한 시간 정도 일까. 영국과의 시차는 9시간. 현지는 계산하면 21시 반 정도이다. 레츠는 조금 고민하다 전화의 발신이력 화면을 열었다. 눈에 익은 이름의 주인 앞으로, 식별번호를 입력하고 통화 버튼을 누른다. 요새는 국제전화도 손쉬워 졌다는 생각이 든다.

 

――여보세요, ?

――, 아니. 그냥. 예선 어땠어?

――그렇구나. 잘됐네. 내일도 하지? 잘 해.

――츠바사 군? 아직 자고 있어. 여기는 아직 5시 반이라고. 어제 칠석이었잖아. 좀 늦게 잤어. 엄마가 치라시즈시 만들어주셨긴 한데, 그거 먹고 나서 조릿대에 탄자쿠 걸고 별 같은 거 얘기하다가.

――그런 건 돌아와서 네가 직접 확인해. 탄자쿠 남겨둘 테니까.

――? 내 건……사업발전 같은 거.

――시끄러워, 이제 끊는다. ? 어어, . ……. ……알겠으니까.

 

그럼, 내일 열심히 해, 라고 무난한 인사와 함께 전화를 끊는다. 레츠는 작게 한숨을 쉬고는 하얀 달이 떠오른 새벽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어젯밤은 몇 년 만에 매우 맑은 칠석날 밤이라 견우직녀도 마음껏 밀회를 즐겼겠지. 그런 별이 총총한 밤에 쓰인 츠바사의 탄자쿠는 창가에 세워진 조릿대 가지에 묶여 살살 불어오는 바람에 흔들리고 있다. 레츠는 창가까지 이동해 한 번 더 그 탄자쿠를 손에 올려 바라보았다. 소원은 지극히 단순한 것이다. 아이다워서 알기 쉬운.

 

아빠랑, 더 많이많이 놀 수 있게 해주세요.’

 

해의 절반을 해외에서 보내는 아버지를 둔 아이라면 무리는 아니라 할 만한 소원이다. 레츠는 조금 눈을 가늘게 뜨고, 어젯밤 츠바사의 이 소원을 봤을 때처럼 이것과 상반될 것일 자신의 바람을 조용히 마음속에 묻었다. 레츠는 츠바사 바람을 이룰 수 있는 심플한 방법을 안다. 알지만――사고는 항상 거기서 정지했다.

 

창밖의 새파란 하늘에는, 하얀 하현달이 보인다. 두둥실 두둥실 믿을 수 없이 현실감이 없는, 그러면서도 몹시 아름답기도 한 그것은, 이울어 가기만 하는 사라져가는 새벽의 달이었다.










가을

 

 

 

――운동회?

――. 다음 달 이날인데 아빠 레이스 해?

――따로 없어. 그럼 보러갈까?

――만세! 레츠삼촌도 왔음 좋겠다.

――괜찮을거야. 그 날은 쉬니까, 응원하러 갈게.

――정말? 만세! 그럼 엄마한테 삼촌 도시락도 만들어달라고 할게!

――……도시락은, 삼촌 건 삼촌이 준비할테니까 신경쓰지 않아도 돼. 연습 열심히 해.

――그래? 같이 먹는 게 분명 더 맛있을거야.

――미안, 츠바사군.

 

 

 

***

 

 

 

――? 레츠 삼촌, 오늘 못 오게 된 거야?

――급한 일이 들어 왔다나봐. 뭐 책임자니까 별 수 없지.

――그렇구나……고생이네.

――나중에 운동회 얘기 들려주래. 그러니까 열심히 해.

――.

――미안하다 사과 했잖아.

――아니야. 삼촌 잘못도 아닌걸.

 

 

 

***

 

 

 

――미안 츠바사군. 갑자기 못 가게 돼서.

――괜찮아, 아빠가 와줘서 엄청 좋았어! 일 많이 힘들었지?

――, 뭐 그렇지. 좀 트러블이 있다고 불러내서.

――책임자는 힘들구나. 레츠 삼촌이 잘못한거 아닌데.

――…아니야. 삼촌이 잘못했어. 미안해.

――레츠 삼촌?

――미안해, 츠바사군.

 

 


***

 

 

  

무엇을 사과하고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삼촌은 나에게 '미안해'라 말하는 일이 자주 있었다.

그럴 때는 대부분 삼촌이 조금 슬픈 듯한 얼굴을 하고 있고, 아버지가 입을 다물고 있는 형태였다.

지금도 그 '미안해'의 이유는 잘 모르겠다. 그 때의 표정의 의미도. 그저, 둘 밖에 모르는 어떤 사정이 있다는 것만은 틀림없다고 생각한다.

 

내가 고등학생일 때, 아버지와 어머니가 결혼을 하게 되었다.

아버지의 재산 상속권이 어쩌니, 친권이 어쩌니 하는 이야기로 어려운 얘기는 잘 모르지만, 그렇지 않고선 매듭이 지어지지 않는 다는 것만은 확실한 모양이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결혼을 했대도 내 생활에는 거의 변화가 없었다. 어머니는 항상 해외를 바삐 돌아다니고 있었고, 아버지 역시 똑같았으니 단란한 가족이라 할법한 시간은 거의 가질 수 없었다 해도 좋았다.

 

, 하나만은. 삼촌이 비슷한 시기에 해외에 가버렸다는 걸 제외하곤, 모든 것이 여태까지와 그대로였다.

 

 

미안해, 츠바사군

 

 

일본을 떠나기 얼마 전, 삼촌은 역시 그렇게 말하고 약간 슬픈 듯이 나에게 사과했다. 해외로 가는 건 삼촌이 직접 맡았던 탐사위성 프로젝트의 대성공으로 높은 대우를 조건으로 한 오퍼가 들어온 것이 이유였던 모양이지만, 그때까지는 비슷한 이야기가 들어왔어도 쭉 거절을 해왔던 모양인 삼촌이, 왜 갑자기 결심을 한 것인지 나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웠다. 왜 삼촌이 사과를 했는지도. 왜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에, 아버지와 삼촌이 한 번도 눈을 맞추지 않았던 건지도. 다만 그 후 내 생활의 어디서도, 삼촌의 존재는 없어져버리고 말았다. 마치 처음부터 없는 것이 당연했던 것처럼.

 

그로부터 주량이 늘어난 아버지에게 물어봐도 아무것도 가르쳐 주지 않았다. 그저 언짢다는 듯이 표정을 일그러트리고 그런 고집불통, 내가 알 게 뭐야라며 입을 다물 뿐이었다. 나는 혹시 삼촌은 어머니가 싫어서, 그래서 결혼할 즈음에 아버지와 삼촌이 싸운 걸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삼촌은 어머니와 만난 적도 없는데, 왜 그런 걸까 싶었다. 분명한 것은 아무것도 모른다는 거. 아무도 아무것도 가르쳐주지 않았다.

 

그로부터 5. 아버지와 어머니는 이혼하고 어머니는 새로운 남편을 맞았다. 나는 이제 혼자 사리분별을 할 수 있는 나이가 되어있었고, 그래서 어느 쪽의 부양에도 들어가지 않고 호적을 분리하기로 했다. 성 만은 아버지 성을 받아서. 어머니가 재혼을 해도, 난 아버지의 아들이라 생각했으니까.

 

그렇게 또 몇 년이 흐르고, 삼촌이 일본에 돌아왔다.

미안해 츠바사군이라고, 또 그 때처럼 조금 슬픈 듯이 웃으며.

그 표정을 봤을 때, 뭔가 나는, 왠지 정말.

 

――아아, 다행이다. 라고, 생각했다.










겨울

 

 

 

연초면 늘 있는 조촐한 부모 자식 3대간의 연석이었다.

 

 

고가 말이야, 결혼을 했어.”

 

 

어머니에게 그런 말을 듣게 된 건 몇 년에 걸친 바이오스피어 계획의 참가에서 레츠가 돌아온 날이었다. 3년 만에 돌아온 고향을 반가워할 새도 없이 들려온 그 사실에 레츠는 처음에는 당황하다가, 순간 결혼의 의미를 머릿속에서 찾고, 되새기고선 겨우 라고 답을 했다. 아무 이유 없이, 아무것도. 츠바사 군의 건도 있고 하니 다행이지 뭐 라며 요시에는 약간 질렸다는 듯이 말했다. 해결해야 할 때 해결 돼서 다행이라고. 거기서 이어지는 어머니의 말을 레츠는 거의 듣고 있지 않았다. 고에게 어떻게 된 거냐고 전화를 해도, ‘그야 우리 헤어졌잖아.’라고 냉담한 답이 돌아올 뿐이었다.

 

돌이켜보면 삼년 전. 몇 년 동안 연락조차 하지 못하게 되는 세계적 프로젝트에 참가하기로 멋대로 결정해버린 레츠에게, 그렇게 오랫동안 기다리라는 거냐며 고가 말했고, 딱히 기다려달라고 얘기 한적 없지 않냐며 레츠가 답했다. 그 다음부터는 폭언을 하고, 그걸 또 폭언으로 받아치고. 헤어지자 어쩌니 하는 말이 해결되지 않은 채, 뒷맛이 개운치 않은 채로 레츠는 프로젝트에 참가했다. 돌아오면 사과하고 그땐 고의 고집을 들어줘야지 같은 걸 태평하게 생각했던 삼년간이었다. 그리고 지금. 사과고 뭐고, 고 안에선 이미 오래 전에 끝난 일이었다는 사실이 들이밀어져 레츠는 멍한 기분이었다. 그 사실을 듣고 나서부터 쭉 멍한 상태이다. 오늘, 새해 인사차원에서 츠바사를 데리고 온 여성이 당연하단 듯이 세이바 가에 방문했을 때조차도 그건 계속되고 있었다. 그녀와 함께 본가에 온 고는 줄곧 레츠 쪽을 보지 않았다. 혼나서 토라졌을 때같은 얼굴을 하고있다고 레츠는 생각했다.

 

 

우왓

 

 

레츠의 사고를 가른 것은 고가 놀라서 뱉은 작은 소리와, 유리가 딱딱한 것에 부딪치는 쩡 하는 큰 소리였다. 그 쪽을 보자 맥주병이 거품을 내며 테이블 위에 액체를 쏟아내고 있었다. 허둥지둥 어머니가 행주를 가지고 오려 일어선다. 고는 망했다라도 말하고 싶은 듯이 맥주병을 들어올리고 있었다. 금색 액체가 테이블을 건너 다다미 위로 떨어진다.

 

 

뭐 하는 거야 ㄱ

뭐 하는 거니 고!”

――――

 

 

언제나처럼 한 레츠의 잔소리를 가로막은 것은 높은 목소리였다. 고는 레츠가 아닌 높은 목소리가 난 쪽으로 찝찝한 얼굴을 하고 있다. 우리 남편이 이렇네요, 미안해요. 그런 뉘앙스의 말을 그녀는 주위에 돌렸다. 그건 당연히 레츠에게도. 레츠는 그에 뭐라 할 말이 없는 표정을 지었다. 잘 웃을 수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아아, 그런가

 

 

아무것도 변하지 않으리라 생각하고 있었다. 고가 결혼을 해도 가정을 가져도, 고작 손을 잡는 일이 없어질 정도일 뿐, 본질적인 것은 분명 아무것도 변하지 않을 수 있을 거라고. 하지만 아닌 것이다. 세대를 가진다는 것은, 지금까지의 호적에서 빠진다는 것이기도 하다. 이제 그 장소는 제 것이 아니게 되어버렸다. 그런 간단한 것조차 내가 모르고 있었으니까, 분명 고는.

 

 

어머 레츠, 왜 그러니?”

급한 일이 남아있었던 게 생각났어. 갈 게.”

그래? 일도 일이지만……가끔은 사생활도 소중히 여기는 게 좋아.”

그렇네, 미안

레츠?”

 

 

상태가 이상하다 생각했을 것이다. 뭔가를 살피는 것 같던 어머니의 시선에서 도망치듯이 레츠는 본가의 현관을 나섰다. 1월 밤의 공기는 시리도록 차가웠다. 달도 없는 어두운 하늘을 올려다보며 레츠는 미간을 찌푸렸다. 마침내 나기 시작한 눈물이, 찬바람에 맞아 몹시 아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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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 2016. 9. 13. 02:59

Pixiv 시노부(シノブ)님의 고레츠 소설인 Contact Binary의 번역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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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코로코로 아니키의 성인 고레츠 때문에 십몇 년 만에 고레츠에 재입덕했습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어른 둘의 이야기. 아직 손만 갖다 댄 정도입니다.

이하 읽지 않아도 되는 제목 해설접촉 쌍성(contact binary) 서로간의 겉보기거리가 가깝게 보이는 두 개의 항성을 이중성이라고 하여, 이중성 중에서도 실제로 가까운 거리로 서로 중력 영향을 미쳐, 서로를 공전 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을 쌍성이라고 부른다. 쌍성 중에서도 두 별 간의 거리가 굉장히 가까운 것을 접촉 쌍성이라고 말하며, 그 중에서도 두 별의 표면이 접촉할 정도로 가까운 것을 접촉 쌍성(contact binary)라고 부른다. 그런 상황에 있는 쌍성계에서는 한 쪽 별의 가스가 다른 한쪽의 별의 표면에 쌓여, 신성폭발등의 특수한 천체현상을 야기하는 무대가 된다.

















11년을 함께 했고, 13년을 떨어져서, 그가 일본에 돌아왔을 때에는, 둘 다 이미 자립해 있었다.

 

줄곧 함께 있었던 기간이, 그렇지 않은 기간에 추월당한 지 ――올해로 8.
















[Contact Binary]









 

 



........, ……….”

 


괴로운 듯한 숨결이 귀를 스쳐나갔다. 이름을 불린 것에 흥분해 더욱 깊이 입술을 겹치자, 홍조가 오른 눈가가 더욱이 붉게 달아올랐다. 기나긴 키스에 응해줄 기색은 언제나처럼 보이지 않고, 욕심을 부리듯 계속해서 입술을 찾는 남자의 어깨로, 거절과 허용의 틈새를 헤매는 손이 붙들 곳을 찾는 것처럼 옷에 주름을 새기고 있었다.

 


레츠 형

 


한숨에 섞인 속삭임에, 그는 무언가를 참는 듯이 눈을 질끈 감았다. 상대의 위에 올라탄 형세로 자세를 바꾸니, 거실의 가죽소파가 끼익 하고 희미한 소리를 냈다. 고개를 젖힌 형세로 숨을 쉬려 연 그의 입에 혀를 쑤셔 넣어 입천장을 핥아 올린다. , 하고 터져 나오는 소리마저 흘리지 않겠다는 듯이 목 뒤를 한 손으로 잡고 깊숙이 혀를 얽는다. 둘의 날숨은 뜨겁고, 황홀함을 머금고 있다. 술이 들어간 건 사실이지만, 취해있는 것은 술 그 자체는 아니었다. 어깨를 잡아 오는 손에 힘이 들어간다. 조금 입술을 떼고 눈동자로 들여다보자 눈치를 보는 것처럼 그의 눈꺼풀이 들어올려지고 흐릿한 노을 빛 홍옥과 눈이 마주쳤다.

 


……레츠 형……

 


한 번 더 이름을 부르니, 그는 시선을 자신에게서 돌리며, 다시 눈을 질끈 감아버린다. 그게 지금 이 상황에서 도망치기 위한 형의 최소한의 발버둥이라는 걸 알아채고 말아, 고는 가슴속이 쿠욱 쑤셔오는 걸 느꼈다. 몇 번을 이렇게 입 맞추어도 농락당해주는 그의 혀끝은 뻣뻣해서, 받아들여는 주지만 응해주지는 않는다. ――마치 지금의 자신들의 관계 그 자체마냥.

 


있잖아……, 안 돼?”

안 돼.”

 


벌써 몇 번째인지 모를, 다음 단계를 요구하는 질문을 청하면 돌변하여 단호한 대답이 돌아와 한숨을 내쉬게 된다. 그 다음 단계만은 항상 명확하게 선을 그어버린다. 여기까지는 받아주는 주제에, 결국 그는 끝까지 받아 주지는 않는 것이다.

 


그럼 왜, 키스하게 해 주는 거야

……네가, ……으응

 


열리려는 입에 다시 입을 맞춘다. 어차피 언제나와 같은 양보의 말 밖에 듣지 못할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고는 마음속의 초조와 안달을 눌러 넣으며, 자신에게서 떨어지려 하는 형의 허리를 한 손으로 거칠게 끌어안았다. 그대로 신체의 라인을 덧그리듯 손바닥을 움직이자, 맞부딪친 입술에서 불분명한 목소리가 높아졌다. 숨이 뜨겁다. 몸도 뜨겁다. 자신이 섹스를 거부당하며 이걸로 참고 있다니, 지금까지 지나쳐온 여자들이 들으면 눈을 휘둥그렇게 뜰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이전에는 이렇게 외설스레 만지는 것조차 거부당했었다. 습관이라는 것은 참으로 무서운 것이라, 회를 거듭할수록 그의 양보의 범위는 조금씩 넓어져가고 있다. 이렇게 조금씩 녹아내리고 섞여 들어서, 언젠가 가까운 시일에 응 하고 말해주지 않을까. 품 안의 뻣뻣한 신체를 끌어안으며, 고는 일이 이렇게 된 처음으로의 머나먼 기억을 헤집었다.











* * *










메일 고마워! 사진 봤어. 당신, 사이좋은 모양이네, 형님이랑.”

 


전화와 노트북을 통해 조금 웅웅거리는 여자의 목소리가 고 네 거실에 툭 하니 울려 퍼졌다. 통화 상대는 츠바사의 모친이다. 형제와 츠바사가 미니4구 레이스를 한 날의 디지털 사진을 오늘 아침 메일로 보낸 지라 그 답례의 말일 것이다. 친부인지 아닌지 확증도 없는 남자에게 제 자식을 맡기고 바다 건너에 가버리는 제멋대로인 어머니지만, 아들이 어떻게 지내는지는 그런대로 신경이 쓰이는 모양인지 기회가 되면 가끔 사진을 보내달라고 부탁 받은 것이다. , 확실히 이 나이가 되어서도 형제끼리 미니4구를 한다는 건, 3자가 보기엔 사이가 좋다는 감상이 나올지도 모르지. 하지만 그런 식으로 생각되는 건 개운치 않은 부분도 있고 멋쩍은 기분도 들어 고는 언짢은 듯이 컴퓨터를 향해 입을 삐죽 내밀었다.

 


딱히, 그렇게 사이좋은 것도 아냐. 보통이잖아.”

아니좀처럼 보기 힘들지, 친척 모임도 아닌데 같이 놀 만큼 사이좋은 형제라니, 내가 알고 있는 형제란 건 대부분 말도 거의 섞지 않는 게 보통이고. 그런 걸 보면 고는 형을 진짜 좋아하나 봐. , 이렇게 상냥해 보이는 사람이라면 그 마음도 이해할 만하지만.”

레츠 형이 상냥? 어디가! 저렇게 난폭한 형은 없다고!? 아니 그건 그렇다 치고, 진짜 좋아한다니 뭔 소리야, 진짜 좋아한다니!”

상냥하잖아. 이렇게 츠바사랑 놀아주고. 진짜 좋아하니까 진짜 좋아한다고 하는 거지. 이것 봐, 이 사진이라던가

 


그녀가 가리킨 것은 고와 레츠가 무릎을 마주하고 머신의 설정에 대해 논의하는 사진이었다. 왜 이런 걸 찍은 거야. , 하고 머리를 감싸 안고 싶어지지만, 하지만 다시 그 사진을 봐 보아도 자신이 레츠에게 대들고 있는 걸로 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뭐였을까, 분명 머신의 설정에 관해 츠바사가 질문을 했을 때, 레브튠과 토크튠 중 결국 어느 쪽이 더 우수한지 같은 20년 전부터 한 발자국도 진전하지 못 한 의논을 했던 느낌이 든다만.

 


대체 여기 어디에서 형을 정말 좋아한다는 말이 나오는 거야? 싸우고 있을 뿐이잖아

그래? 내가 보기엔 엄청 즐거워 보이는데

?”

요새 슬럼프였지 않아?”

무슨 얘기야.”

일 얘기야. 당신이 그렇게 좋아하는 레이스에서도, 내가 봤던 한에선 이런 얼굴은 좀처럼 보여주지 않았는걸

그건

 


아픈 곳을 찔린 느낌이 들었다. 그야 어쩔 수 없잖아 하고 20년 전의 자신이 투덜댄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입을 다물어버린 고와 대화 할 흥미를 잃은 건지, 그녀는 또 츠바사 사진 부탁할게, 하고 말하고는 전화를 끊어버렸다. 분한 듯이 통화 소프트웨어를 종료시키고, 고는 소파의 등받이에 털썩 등을 기대고선 한숨을 쉬었다. 카 레이스 보다도 미니4구 레이스가 더 재밌어 보인다고, 아까 들은 말이 빙글빙글 머릿속을 맴돈다.

 


……그런 말을 들어도 말이지…….”

 


그야 어쩔 수 없잖아. 가장, 사랑했던 시간이니까,

 

그녀가 말한 것은 사실이다. 최근 그렇게 즐거웠던 일은 여태껏 한 번도 없었다. 형제끼리 머신을 달리게 한 건 정말 오래간만이었지만 형과의 승부는 역시 과장하나 보태지 않은 최고였고, 사진에서도 그게 전해졌으니까 그녀는 그런 말을 꺼냈을 것이다. 고는 소파에 몸을 뉘인 채, 왠지 모르게 재깍재깍 움직일 생각이 없는 의식을 과거로 가라앉히고 있었다. 벌써 20년 가까이 지난, 그가 자신을 두고 가버렸을 때의 기억을 덧그린다.


 

레츠 형외로워

 


그 마지막으로 그와 미니카 레이스를 했던 날에, 참지 못하고 토로한 말은 계속 자신의 마음속에 있었다. 레츠가 머나먼 이국의 땅으로의 여로에 오른 것은 고가 막 12살이 된 여름이었다. 적응기간도 포함하여 미국은 8월부터 가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고의 6학년 여름방학이 시작되자마자, 레츠는 미국으로 가버렸다. 처음에는 해에 두 번은 귀국했지만, 독립심이 강한 형은 머지않아 몇 년에 한 번 정도 밖에 집에 돌아오지 않게 되었다. 그렇게 그가 그쪽의 대학을 졸업하고 일본에서 취직하기까지 10. 초등학생 때의 응석받이 애송이의 마음인 채로, 고의 안에서 형과의 시간도 관계도 그 뒤로 멈춰버린 채였다.

 


형을, 진짜 좋아하나 봐

 


그녀의 말을 다시 되새긴다. 맞아, 그래. 정말 좋아해. 하지만 레츠 형은 아냐. 적어도 쭉 함께 나란히 달릴 생각은 없었어. 어린애였던 자신이 울면서 생각했던 것을 떠올린다. 바보구나 하고 놀리는 것 같은 형의 높은 목소리가 들린다. 맞아, 그래. 시간이 얼마가 흘러도 바보 같은 녀석이지. 고는 뱃속에서 끓어오르는 뭔가를 토해내듯 꾹 참아왔던 한숨을 뱉었다. 짜증을 내며 마구 소리친다고 해서, 혹은 무작정 욕구를 주장한다고 해서 뭔가가 해결될 리는 없다고, 이해한 것만이 그 때의 자신과의 차이였다.












* * *











아빠 매그넘도 레츠 삼촌 소닉도 진짜 빠르구나! 나도 빨리 저런 머신을 만들 수 있게 됐으면 좋겠다~”

, 윙 매그넘을 커스터마이즈한다면, 불가능한 일도 아니겠지?”

하지만, 아빠랑 삼촌은 카울부터 디자인 했잖아요? 나도 혼자서 디자인 하고 싶어!”

~, 백 년은 일러

츠바사 군은 센스가 좋으니까, 분명 금방 우리들을 쫓아올 거라고 생각 해

정말!? 레츠 삼촌!”

어이어이, 너무 비행기 태우지 말라고 레츠 형

정말이야, 츠바사군

와아! 그럼 내가 언젠가 내 스스로 디자인한 머신을 만들면, 삼촌 승부하자!”

아아, 물론이지

됐다아!”

 


츠바사가 온 이래, 정기적으로 머신을 달리게 하러 가게 된 사가미 모형 점에서 돌아오는 길. 고가 운전하는 차의 뒷좌석에서 까불거리던 츠바사가 기세 좋게 레츠에게 뛰어들었다. 주행 중엔 위험해, 하고 좋은 말로 타이르니 예절 바르게 죄송합니다, 하고 시트에 앉은 모습을 거울 속의 레츠는 생글생글 웃으며 바라보고 있다. 그것에 약간 초조해진 고가, 형은 오늘 바로 집으로 돌아갈 거냐고 물어오자, 레츠는 츠바사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로 그럴 생각이라고 대답했다. 그 순간 츠바사의 아쉬운 듯한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한창 어리광 부릴 시기의 소년은 상냥한 백부와 아직 조금 더 같이 있고 싶은 모양이었다.

 


에이~, 삼촌 집에 갈 거야? 좀만 더 미니카 얘기하자~”

그래도, 이제 저녁 먹을 시간이잖니. , 너 츠바사 군의 식사는 어쩌고 있는 거야?”

먹는 거? 거의 시켜먹지. 저 녀석 피자 좋아하니까

뭐어? , 한창 자랄 아이의 식사를 배달 음식으로 때우고 있는 거야!?”

 


그것도 피자라고? 하고 크게 소리를 지르는 형에게, 거울 건너편의 고의 표정은 지겹다는 듯 눈살을 찌푸렸다. 분위기가 급변한 걸 깨달은 모양인 츠바사는 엄마도 늘 피자 시켜 줬었고 나 피자 진짜 좋아해! 하고 별 도움도 안 되는 말을 하고 있다. 레츠가 두통을 참는 듯이 한숨을 뱉었다. 알겠어. 오늘은 삼촌이 만들게. 하고 말하니 츠바사의 조마조마했던 얼굴이 활짝 펴진다.

 


정말? 레츠 삼촌, 우리 집 오는 거야?!”

, 영양이 치우친 식사만 하면, 키도 잘 안 커, 츠바사군. 어차피 고는 요리 같은 건 안 하잖아?”

! 아빠 네 냉장고 안에는 술 밖에 없어!”

, 닥쳐! 망할 녀석.”

.”

 


뒷좌석에서 굳은 목소리가 들리는데도, 고는 점점 미간을 찌푸렸다. 레츠 형이야말로 딱히 밥 해 먹는 것도 아니잖아, 연구소에 틀어 박혀 사는 주제에 하고 투덜거리니, 필요해도 안 하는 너하고 똑같은 취급하지 마하고, 츠바사의 앞이라서 최대한 좋은 말로 한 반격이 돌아왔다. 츠바사는 그런 둘의 말싸움은 신경 쓰지 않고 삼촌, 뭐 만들어 줄 거야! 하고 떠들어대고 있었다. 그런 츠바사에게 레츠는 인상을 풀며 뭐가 먹고 싶어? 같은 소리를 하고 있다. ! 하고 운전석에서 들려 온 혀를 차는 소리에 돌아온 것은, 고가 알고 있는 따가운 시선이 아니라 너는 뭐가 먹고 싶냐 는 어른스러운 대응이었다.












* * *











잘 먹었습니다~! 정말 맛있었어, 레츠 삼촌!”

별 것도 아닌데 뭘. 맛있었다니 다행이다. , 정리는 네가 해.”

? 왜 내가?”

츠바사 군은 만드는 걸 도와줬잖아. 아무것도 안 한 건 너 밖에 없어.”

귀찮구만. 월요일에 가사도우미 오니까 그 때까지 냅둬도 된다고.”

~, 알겠습니다.”

 


성인이 되고 나서 재회한 이래, 레츠가 동생에게 시끄럽게 잔소리를 하는 일은 거의 없어졌지만, 츠바사가 있는 앞에서는 고의 방탕한 생활태도를 썩 좋은 눈으로 볼 순 없다. 평상시라면 별 수 없는 놈이라고 넘어갈 레츠는 오늘에 한해서는 비교적 엄한 태도로 동생을 대하고 있었다. 고 역시 다소 아이의 존재를 신경 쓰고 있는 건지, 평상시처럼 시끄럽다고 일축해버리지 않고, 귀찮다는 듯 일어서서는 그래도 식기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츠바사도 함께 일어서서 허둥지둥 식기를 치우기 시작했다.

 


아빠, 나도 도울게!”

애한테 신경 쓰게 하고 싶지 않네요. 너는 목욕이나 해.”

그치만

괜찮아 츠바사군, 혼자 목욕 할 수 있지?”

,

 


불안한 듯 욕실로 자취를 감춘 츠바사를 바라보며, 레츠는 한 번 한숨을 쉬었다. 애당초 이 집에는 식기세척기도 있고 해서 귀찮아 할 정도의 일은 없을 것이었다. 주에 한 번은 가사도우미를 부르고 있는 모양이다 만, 대체 츠바사는 평소에 얼마나 열악한 환경에 놓여 있는 건가 싶어 머리를 감싸 안고 싶어진다. 아무래도 어머니 쪽도 제대로 가사를 돌보는 것 같지 않아 보이고, 조금도 답이 나오지 않는 것 같아 보여 안쓰러운 마음마저 들었다. 자신들이 어렸을 적에는, 전업주부인 어머니가 무엇이든 해주는 게 당연한 일이었다. 운이 좋았다는 생각도 들고, 그게 당연한 시절이었다고도 생각한다. 그로부터 20년 가까이. 가족의 존재 방식은 다양화 되어 그 시절 자신들의 경험으로 부모 자식의 관계를 생각해야 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고는 츠바사군을 대체 어떻게 생각 하는 거지? 얘길 들어보면 아예 떠맡게 된 것도, 양육비 같은 얘기도 없는 것 같은 데

 


F1레이서는 고소득자다. 톱 레이서가 되면 한 해에 억 단위의 돈이 굴러들어오는 것도 결코 흔치 않은 일이 아니다. 어린아이 한 두 명 정도야 키우는 것 자체는 별 게 아닐지도 모르지만, 사생아는 상속 관련 얘기가 나올 때에는 이야기가 까다로워진다. 분명 몇 년 전에 혼외자라도 적자와 동등하게 상속권을 부여하는 판결이 내려졌다고 뉴스에 오른 걸 본 기억이 있고, 이후 고가 츠바사의 모친 이외의 다른 사람과 결혼해서 아이가 생기거나 하면 상속 문제로 진흙탕 싸움이 될 가능성도 있다. 고는 그런 소송싸움은 귀찮다고 손을 놔버릴 것 같은 느낌도 든다만, 당사자인 만큼 제대로 생각해둬야 할 부분이라고 레츠는 생각한다. 무엇보다도 그렇지 않으면 츠바사가 불쌍하다. 그런 식으로 내심 이런저런 걱정을 하고, 그러나 그런 모든 걱정들을 말할 수 없는 채로 레츠는 북받치는 형으로서의 의무감을 제 마음 속으로 얼버무릴 뿐이다. 어차피 이런 현실적인 이야기를 고가 진지하게 들을 생각도, 할 생각도 없으리라는 것은 알고 있었고, 형하곤 상관없지 않느냐는 말을 들으리라는 것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신에겐 고에게 이러니저러니 잔소리 할 권리가 없다는 생각 또한 레츠의 마음속에서 맴돌고 있었기 때문이다. 자신들은 유 소년기를 제외하곤 대부분을 떨어져서 컸다. 그것은 레츠 자신이 내린 과거의 결단 때문이었으나, 사춘기 시절에 전혀 함께 지내지 못한 사실은 두 사람의 사이에 예상 이상의 심리적인 거리를 낳고 말았다. 예전에는 무슨 말이든 서로 얘기 할 수 있었고, 말하기 어려운 것들도 아무렇지도 않게 지적할 수 있었는데, 지금에서는 적당히 사이좋은 친구 정도의 느낌이 아닌가 싶을 정도다. 그렇게 레츠가 무의식중에 한숨을 내쉴 때, 그 때까지 부엌에서 나던 물소리가 멈춘 느낌이 들었다.

 


아이고, 드디어 끝났구만

수고했어. 싱크대는 나중에 내가 청소할게

“오~. 노동을 했으면 역시 시원한 맥주지. 레츠 형도 마실래?”

기껏 몇 분 집안 일 한 것 가지고 무슨 대단한 일이라도 한 것 마냥 말하고 있네. 줘 봐.”

평소에 안 하던 일을 하면 피곤하다구. , 레츠 형 꺼

 


부엌에서 거실로 돌아오자마자 서둘러 맥주병을 따기 시작한 고를 향해 레츠는 쓴웃음을 지었다. 평소라면 혼자 마셔버리면서 오늘은 레츠의 컵도 준비해서는, 동생 나름의 배려인 그것을 사양 않고 받아들이기로 했다. 운전수가 술을 마셔버렸으니 오늘은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돌아가야겠지만, 때로는 그런 것도 좋다고 생각한다. 둘이서 조촐하게 건배를 하고 목구멍으로 맥주를 넘기자 시원하고 깊은 맛이 전신을 휘감아서 술을 별로 마시지 않는 레츠도 이게 좋은 맥주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고는 계속 마셔도 괜찮다며 반쯤은 빈 컵에 술을 더 따랐다. 그것이 고도 지금은 제 한 사람 몫은 벌고 있다고 묘하게 실감시켜서, 레츠는 새삼스레 마음이 저몄다. 어느 사이에 둘 다 어른이 되었을까, 청소년기의 후반을 완전히 따로 따로 떨어져 자란 자신들은 아직까지도 잘 모르는 부분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뭔가, 처음인 것 같네. 이렇게 너랑 둘이서 마시는 건

그랬나? , 레츠 형은 블라스트소닉을 날리는 일에만 매달리고 있었으니까. 기술자 녀석들이 연구 좋아하는 건 마조히스트 같아.

너도 옛날엔 자는 것도 아까워하면서 매그넘만 생각했잖아. 그거랑 같은 거야

그래애?”

그래

 


쓰잘 데 없는 이야기다. 수박 겉핥기 같은. 소파의 옆 자리에 앉아있어도 미미하게 느껴지는 거리감에, 레츠는 왠지 모르게 불안한 기분이 들었다. 레츠 형 레츠 형 하고 시끄러울 정도로 따라다니던 동생은 이제 없다. 그건 어느 샌가 자연스럽게 사라진 게 아니라, 먼 옛날에 자신이 강제적으로 단절해버린 것이었다. 레츠가 미국의 고등 교육 과정을 끝내고 일본에 귀국했을 때에는 고는 이미 레이서로서 활동 하고 있었고, 레츠도 자신의 20대를 우주 공학 연구에 바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와중에는, 변변히 형제끼리 친교를 쌓는 것도 할 수 없었다. 오히려 고는 레츠를 피하는 것처럼 보였다. 레츠도 처음에야 오랜만에 만나는 남자형제는 원래 이런 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쥰에게서 고가 한가한 것 같다는 말을 듣고 가끔은 만나지 않겠냐고 연락을 해도 바빠한마디로 거절당하는 상황이 지속되면 좋든 싫든 알아차리기 마련이다. 고는 확실히 레츠와 만나고 싶어 하지는 않았다. 레츠가 지금처럼 본가에 잠시나마 돌아와 있기 전까지는 얼굴을 볼 기회조차 만들 수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무슨 바람이 분거야?”

뭐가?”

나랑 둘이서 만나는 거, 싫어했잖아. 조금 전까지만 해도 이렇게 같이 술을 마실 거라고는 생각조차 못 했어.”

―…, , 요샌 레이스에서 못 이겨서 기분이 안 좋았으니깐.”

그것 보다 예전부터잖아? 네가 날 피하기 시작한 건.”

…………

역시난가.”

 


하하, 하고 레츠는 웃었다. 정말 자신은 술에 약하다. 아직 겨우 한 잔 마셨을 뿐인데, 평소라면 할 리가 없는 것들이 입을 뚫고 나와 버린다. 뭐 몇 년이나 일본을 떠나있었던 형 같은 건 상대하기 어렵겠지 하고 저도 모르게 본심을 흘리니, 어려워하는 건 레츠 형 쪽이잖냐고 무연히 대답이 돌아왔다. 무심코 고 쪽을 본다. 그로서는 예의바르게 컵으로 마시고 있던 술을 한숨에 들이 키고, 결국 병에 입을 대며 고는 애가 타는 듯이 투덜댔다.

 


돌아와서부터, 서먹서먹하게 굴잖아. 내가 뭘 해도 화도 안 내고. 잔소리 안 하는 레츠 형이라니 형답지 않아서 기분 나빠.”

잔소리라니…… 언제 적 얘기야. 너도 어엿한 성인이고 하니까 일일이 사생활로 간섭 당하고 싶지 않을 거 아냐. 범죄라도 저지른 것도 아니고

그게 답지 않다는 거야.”

……

레츠 형은 옛날부터 항~상 그래. 혼자서 지 멋대로 어른스러운 척. 손이 가는 상대가 없어져서 그 쪽에선 즐거웠잖아? 실제로 즐거운 것 같았고. 소닉도 두고 가고, 미니카 레이스에서도 멀어져선, 그래도 형은 엄청 즐거워 보이더라.”

…………

 


미국에서의 생활을, 고에게 직접 말한 적은 별로 없다. 하지만 본가에 전화를 할 때나 가끔 귀국 할 때에는 부모님께 걱정을 끼치지 말아야지 하고 레츠는 애써 그 쪽에서의 생활을 즐겁게 지낸다는 식으로 전해왔다. 실제로는 일본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이 커리큘럼은 빡빡했고 힘든 일도 많았지만, 그것은 충실하다는 말로도 볼 수 있었고, 얻는 것이라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 레츠의 태도는 분명 고에게는 유쾌하지 못한 이야기였겠지. 그리고 그건 그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당연한 것이었다. 함께 달려왔던 길을 도중에, 동생을 혼자 둔 채로 자신은 그 길에서 떠났으니까. 레츠는 손에 든 두잔 째의 맥주를 꿀꺽 들이켰다. 비뚤어져버린 커다란 어린 아이에게 제대로 말 해줘야겠다고 생각했다.

 


확실히, 미국에선 즐거운 일도 많았지만, 딱히 그런 것만은 아니었어. 일본을 떠나는 건 역시 불안한 점도 많았고, 네가 있었으면 했던 적도 몇 번이고 있었고.”

…………

 


전해질까. 그보다, 자신은 과거의 제 심정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걸까. 레츠는 말을 골라가며 더듬더듬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테이블 위의 맥주병을 손에 쥐고, 비어버린 잔에 따라 입에 머금었다. 미약하게 쓴 내가 나는 액체를 넘기자 조금은 마음이 가벼워진 기분이 들어서, 레츠는 그 때의 자신의 그림자를 쫓듯이 시선을 천장으로 옮겼다.

 


빅토리즈시절의 우리들, 기억해? 너는 무모하긴 했지만 레이스나 머신에 있어서는 천재적이었으니까, 나도 그때는 초조했었어. 뭔가 나만의 것이 있어야 한다고. 지금 생각하면 그 나이에 전문 분야를 한정시킬 필요는 없었을지도 모르지만, 진로상담 때에 츠치야 박사님께서 공기 역학에 대한 연구라면 항공 역학 관련 학교에 유학하는 건 어떠냐는 말이 나와서, 그 때는 다른 쪽에서 무언가를 찾아내야겠다고 생각했어.

“............”

미니카도, 분명 사실은 완전히 그만두지 않아도 괜찮았을 거라고 생각 해. 하지만 내 스스로 내 성격을 생각해봤을 때, 이도 저도 아니게 하는 것도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어. 그러니까 전부 놓고 간 거야. 넌 그걸 원망했을지도 모르지만……

 


고는, 고개를 숙인 채 가만히 입을 다물고 레츠의 말을 듣고 있었다. 그것이 몹시 어릴 적의 그와는 박리되어 보여서, 레츠는 반은 무리해서 웃어 보였다. 어린 애였구나, 다시 한 번 생각했다. 고집을 부려서 충분히 말도 하지 않고서, 자신보다도 더 어린 동생에게 아무것도 설명해주지 않고서 모든 것을 버리고. 아니, 버린 것은 아니었다. 그저 정말 잠깐 동안만, 서랍에 넣어 두었던 파트너처럼 넣어 두자고 생각했을 뿐이었는데. 레츠는 한 입 더 맥주를 입에 대며, 이번엔 제 손으로 시선을 떨구었다. , 하고 말을 걸자 왜 하고 억눌린 목소리가 돌아왔다. 그때는 이 처럼 조용한 대화 따윈 할 수 없었다. 자신의 유치한 갈등을, 동생에게만은 들키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던 것과 비슷하게.

 


맘대로 나가 버려서, 미안해. 나 역시, 네가 없어서……충분히 외로웠어.”

…………

……?”

딱히, 형을, 원망한 게 아냐

……. 그런가

 


외로워, 그 때 울면서 말해 주었던 동생은 지금은 그 말은 입에 담지 않았다. 그것 만으로 레츠의 가슴 속의 적막한 느낌은 거세졌다. 그렇게 저 또한 외로웠다고, 바보 같을 정도로 단순한 사실에 레츠는 새삼스레 깨달았다. 그러했다, 외로웠던 것이다. 그렇게 항상 함께 있던 동생이 모르는 사이에 커버려서, 자신을 예전처럼 신경 써주지 않게 되어버린 당연한 것이 쭉. 그러니까, 적어도 레츠는 이런 식으로라도 고와 얘기하게 되어서 다행이라 생각했다. 변함없이 떨어져 있던 시간의 거리는 메워지지 않을지도 모르겠지만, 20년의 시간을 넘어, 그와 다시 레이스를 할 수 있게 된 지금.

 


이런 얘길 할 수 있게 된 건……츠바사군 덕분일까

――레츠 형

뭐가 뭐가아? 내 얘기 하구 있어?”

윽 츠바사! 너 몸 제대로 닦아, 물바다잖아!”

 


거실에 감돌던 무거운 공기를 걷어낸 것은, 소년의 높고 쾌활한 목소리였다.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더니 찰박찰박 욕실에서 달려 나온 흠뻑 젖은 그에게, 답지도 않게 고가 노성을 지르고는 쓱 하고 달려 나갔다. 아 그래, 저건 부끄러운 걸 감추려는 거겠지. 마룻바닥이 젖는 것쯤이야 평소라면 신경도 안 쓸 것 같은 동생이 당황한 듯이 아마 제 자식일 아이에게 설교하는 모습에 레츠는 무심코 웃었다. 고가 뭘 얘기하려 했던 건지는 신경이 쓰이지만, 분명 이제부턴 들을 기회는 있겠지. 컵 안의 남은 맥주를 레츠는 마음 편히 들이켰다. 고민하고 고민하다 겨우 한 발자국을 내딛은 것처럼, 매우 만족스러운 기분이었다.












* * *












레츠 형?”

 


욕조에서 나온 츠바사가 졸음을 호소해 잠시 아이 방에 있던 고가 돌아왔을 때, 거실에 깨어있는 사람의 기척은 없었다. 이번엔 이쪽이냐며 한숨을 쉬며 테이블 근처에 다가가자 레츠가 소파에 기대 잠들어있다. 다행히 내일은 둘 다 오프라서 하루 묵는 것쯤에 문제는 없으나, 손님용 이불 같은 건 이 집에는 없기도 하니 소파에서 담요라도 덮고 자게 할까 하며 고는 머리를 긁었다. 아니면 택시라도 부르는 편이 좋을까. 고는 어쨌건 본인에게 의견을 묻기 위해 레츠를 흔들어 깨우려했다. ~하고 분명치 않은 목소리를 낸 레츠는 눈을 뜨지도 않고 입 속으로 무언가 웅얼웅얼 대고 있다. 기껏해야 세 잔 정도밖에 안 마신 주제에 꽤나 심한 술주정이다. 어이 레츠 형, 하고 옆에 앉아 좀 더 세게 흔들자, 조금은 깨어난 모양인 레츠는 우~웅 하고 작게 신음하며 상체를 일으켰다. 많이 마신 것도 아니고 필요 없을 것 같긴 한데, 물 마실래? 하고 일단 말을 건다. 레츠는 멍하니 고에게 시선을 주었으나, 곧 다시 눈이 감기고 스륵하고 몸이 기우뚱했다. 이런, 쓰러지겠다. 순간 그렇게 생각해 껴안으니 완전히 힘이 빠진 반신이 고에게 기대왔다. 대체 얼마나 약한 거야.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형의 의외의 일면을 알게 된 것 같아 고는 조금 즐거운 기분이기도 했다. 이런 식으로 그가 무방비한 추태를 보이는 일 같은 건, 어린 시절에 조차 좀처럼 볼 수 있는 일은 아니었으니까.

 

레츠는 아까 고의 실력에 대한 초조함이 있었다는 식으로 말했지만, 고 입장에서는 그렇게 다방면에 걸쳐 우수했던 형이 어째서 그런 식으로 생각했었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머리 좋고 착실해서, 부모님에게서도, 주위의 어떤 사람에게도 신망이 두터웠던 형과 공부도 못하면서 하는 일이나 해야 할 일이나 빈축만 샀던 자신. 그것을 비하한 적은 한 번도 없었고, 주위를 배려하기만 하는 형처럼 되고 싶다는 생각도 없었지만, 고는 레츠를 진심으로 대단하다고 생각하고 있었고 자신은 형처럼은 되지 못한다는 것도 자주자주 느끼고 있었다.

 

확실히 공식전에서는 자신이 먼저 골인 하는 일이 많았지만 고는 자신이 레츠를 넘어섰다 생각한 적은 마지막까지 없었다. 미국에 건너가기 전의 마지막 레이스에서 역시, 그는 어엿하게 승리를 거머쥐고 갔음이다. 그런 형이, 사실은 자신에게 콤플렉스를 느끼고 있었던 것이라니, 그런고로 먼 이국의 땅을 건너간 것이라는 고백은, 고의 마음속에 이루 말로 표현 할 수 없는 고양감과 갑갑함을 초래했다.

 


정말, 제멋대로잖아. 형은

 


남의 일은 모르는 법이라는 건 고 또한 알고 있다. 저희들은 언제든 저 혼자서 장애물을 넘어서고, 저 혼자서 결정해왔다. 하지만 상대를 놔두고 가는 건 횡포라고, 고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게 단순히 자신의 아집이라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고는 언제까지고 바람을 가르며 달리고 싶었다. 레이스의 공기와 함께 달려 나가고 싶었다. 그게 심화된 것이 지금의 제 입장으로, 레츠가 그것에 동조해줄 필요가 없다는 것 역시 분명히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납득은 할 수 없었다. 그렇기에 당시에도 반대하고 반발하고 다퉜으며, 그게 모두 갈 길을 가르는 것 자체 보다 형이 제 옆에서 없어지고 마는 것에 대한 저항이었다는 걸 깨달은 건 시간이 훨씬 더 흐르고 난 뒤의 일이었다.


 

나 역시, 충분히 외로웠어



조금 전 레츠에게 들은 말이 마른 땅을 적시는 물처럼 고의 마음을 채워 너울너울 흔들리고 있다. 저에게 기댄 몸에서는 규칙적인 숨소리가 들려와서, 그게 묘하게 애달파 고는 꽈악하고 기억 속에 있는 것과는 전혀 다른 크기의 신체를 끌어안았다. 생각해보면 이런 식으로 레츠의 체온을 직접 느끼는 것은 그 이별의 레이스 이래 처음이었다. 외롭다고, 그에게 매달려 저는 울었다. 형은 난처한 듯 웃으며, 흐느껴 우는 자신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었었다.


 

성장하질 않았네


 

그 시절부터 제 안의 형에 대한 감정은 무엇 하나 성장할 수 없었다. 성장할 기회조차 부여받지 못했다. 지금도 이렇게 맞닿은 채 있는 게 기뻐서, 움직이려야 움직일 수도 없이 꼼짝 않고 숨을 죽이고 있다. 마치 부모님이 잠자리에 데려다 줬으면 해서 자는 체하는 어린아이 같다고 생각했다. 그런 고의 감정도 모른 채로, 어깻죽지에 머리를 묻은 형은 잠결에 아까처럼 무엇인지 웅얼웅얼 말하고 있다. 대체 뭘 말하고 있는 건지 귀를 기울이자, 작게 자신의 이름을 부르고 있는 것을 깨달아서 고는 숨을 죽였다. 레츠 형. 엉겁결에 회답하자, 그에 반응한 레츠가 느릿하게 몸을 조금 움직인다. 힘이 빠져 맥없이 늘어져 있던 오른팔이 들어 올려져, 고의 뒷머리에 천천히 손바닥을 붙이고 그대로 느릿느릿 등까지 쓰다듬었다. 어린 아이가 떼쓰는 걸 달래는 듯. 잠이 섞인 목소리는 여전히 고의 이름을 부르고 있다. 옛 일이라도 떠올리고 있는 걸까. 고는 레츠를 끌어안은 채 쓰게 웃었다. 그런 걸 원했던 게 아니야. 이런 식으로 혼자서만 어른이 된 것 같은 얼굴로, 어린애인 채인 자신을 타이르는 손을 원했던 게 아니야. 사실은 그 때도, 지금도, 옆에서 함께 달려 갈 수 있는 손 하나를 원했던 건데.

 


바보아냐……


 

고는 뒷머리의 레츠의 손의 감촉을 느끼면서, 목구멍까지 치밀어 오르는 무언가를 억지로 참는 듯이 그렇게 생각했다. 누구를 향한 말 인지는 제 자신도 모르겠다. 아무것도 모르고 있는 형을 향한 것이기도 했고, 그런 형에게 아직까지도 계속 붙들려 있는 자신을 향한 것이기도 하다고 생각했다. 자신들은 사춘기에 접어들었을 때부터 줄곧 함께, 무엇이든 같이 넘어왔다. 그가 옆에 없는 미래 따윈 생각해 본 일 조차 없을 정도로. 그 예전의 일체감을, 같은 장소에 뿌리를 박고 같은 빛을 지향했었던 상쾌함을, 그리고 그 것을 갑작스레 빼앗긴 아픔을, 그 후의 고독을, 속절없음을, 제 스스로 눈부신 장소를 버리기로 선택하고 가버린 형은 분명 설명해봤자 이해할 수는 없는 것이다.

 


나 역시, 충분히 외로웠어

 


멋대로 말하지 말란 말이야. 내가, 얼마나――

 


고는 저도 모르게 끌어안은 팔에 힘을 주었다. 그게 괴로웠던 모양인지 레츠는 고의 머리에서 손을 떼고 신음하듯 소리를 냈다. 조금 저항하는 듯한, 그 기색에 고는 머릿속이 끓는다. 떨어지고 싶지 않아. 이제 두 번 다시. 초등학생 때에 맛보았던, 그런 경험은 두 번 다신 겪기 싫다 생각했다.

 


…………?”

 


이 감각은 뭐지. 간신히 눈을 뜬 모양인 레츠의 몽롱한 부름을, 고는 어딘가 머나먼 이국의 말처럼 들었다. 손을 뻗어도 닿지 않는 서쪽하늘의 석양처럼, 어른거리는 두 눈동자가 꿈의 연장선을 바라보는 듯이 고의 눈동자를 마주 봤다. 그것이 다시 감기는 모습을 보고 있을 수가 없었던 걸까. 충동의 이유는, 알 수 없다. 그저 그 곳에 있었던 것은, 정신이 아득해질 정도로 옛날부터 품고 있었던 것 같은 그를 향한 갈구와 집착과, 그리고 어디에도 보내고 싶지 않다고 바라는 소유욕과도 닮은 무언가로.

 


――――

……, , ?”

 


얼떨떨한 듯한, 목소리. 술기운에 젖어 꿈결을 헤매던 레츠는 무엇을 당한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이해할 수 없는 것은 고도 역시 같았다. 지금 자신은 대체 뭘 한 것인가. 눈이 아찔해질 만큼 높은 장소에서 갑작스레 내던져진 것처럼 쿵쾅쿵쾅하고 심장소리가 흐트러지고 등줄기에 한기를 느낀다. 동시에 지독한 갈증과도 같은 감각에 덮쳐진 고는 다시 눈앞의 무방비한 입술을 찾았다. 서서히 깨기 시작해 다시 사태를 파악한 모양인 레츠가 무어라 타이르는 것 같은 말과 함께 빠져나가려고 하는 것을 혼신의 힘을 다해 꽉 붙잡는다. 가지 말아 줘. 아무데도 가지 마. 뭉개진 크레용으로 온통 칠해진 것 마냥 사고 속에서 작은 소년이 울부짖고 있다. 외로워. 외로워. 외로워. 외로워. 아무데도 가지 못하게 하고 싶었던, 나의 가장 소중한, 하지만 나를 가장 소중하게는 생각해주지 않았던 사람.

 


레츠 형……

 


머릿속에 열이 났다. 그 열기는 차례로 번져 가, 고의 전신을 지배해갔다. 어떻게 해야 이 사람이 저만의 것이 되어줄까 하고 그것만을 생각한다. 숨을 쉬려 살짝 벌어진 입술을 혀로 가르고, 입천장을 핥아 올리자 품 안의 몸이 흠칫 떨리며 레츠의 체온이 조금 올랐다. 취한거야? 상대를 잘못 찾았잖아, 어찌할 바를 모르는 목소리가 맞춰진 입술 사이로 분명치 않게 들려온다. 제대로 몸부림 치려하지 않는 것은 고가 술 때문에 제정신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일까. 형도 아니고 그거 마시고 안 취해. 입술을 떼고 말하자 두 개의 붉은 색이 곤혹스러운 듯 흔들렸다.

 


있잖아, 레츠 형

……그만,

싫어. , 좋아해

역시 취한거지!? 그만으응

 


몇 번이나, 몇 번이나 입을 맞추고 혀를 섞고, 그게 터무니없이 기분이 좋다. 그렇게 고는 저가 내뱉은 말로 저가 납득했다. 좋아해. 그래 줄곧 좋아 했다. 가볍게 입술을 뗄 때 좋아 한다 소리 내어 말하고 다시 키스 하는 것을 반복 하고 있자, 모호했던 감정의 형태가 차차 확실해지며 윤곽을 갖기 시작했다. 묵직하고 거무칙칙한, 어느 샌가 썩어버리고 만 아름다웠던, 과거에는 분명히 아름다웠음에 틀림없었던 감정 덩어리. 그럼에도 그것은 무엇보다도 강한 빛처럼 고 안에서 단 한가지의 대답을 가져오고, 항거할 수도 없이 그 안에 삼켜져가던 자신을 강제적으로 실감시켰다. 지금 품 안에 있는 상대가, 갖고 싶어서 갖고 싶어서 참을 수가 없다. 누군가를 제 것으로 만드는, 그 기술을 알고 있는 남자는 고민도 하지 않고 익숙한 단계를 밟으려고 했다. 경직된 신체를 소파에 내리누르며, 입술을 목덜미에 옮겨 얇은 피부를 빨며, 성격을 표현하듯 단정히 잠긴 셔츠의 단추를 끄르려 했다, 그러나 그 때――.

 


그만, , !!!!”

으윽――!”

 


세고 둔탁한 충격이 옆얼굴을 덮치고, 자연히 고는 소파에서 굴러 떨어졌다. 고에게서 벗어난 레츠는 가쁘게 숨을 몰아쉬고 있다. 아무래도 잠깐 몸을 뗀 틈에 팔꿈치로 호되게 한방 먹은 모양이다. 고는 욱신욱신 아파오는 오른 뺨도 신경 쓰지 않고 몸을 일으켜 굶주린 동물처럼 느릿느릿 레츠에게 무릎걸음으로 다가갔다. 형의 눈은 한 발자국도 물러서지 않는다. 강한 빛을 내뿜는 보석 같은 홍채가 쏘아보듯이 고의 눈을 뚫어지게 쳐다보며 앞의 행동을 견제하고 있다.

 


무슨 짓이야. 아까

행동 그대로야. 이해 못할 정도로 애새끼는 아니잖아, 나이도 먹을 만치 먹었고.”

, 언제부터

글쎄. 지금에서야 깨달은 거기도 하고. 그치만 아마, 아주 옛날부터일걸

지금에서야 깨달았다니……

딱히 언제였든지 상관없잖아, 시기 같은 건. 내가…… 쭉 레츠 형을 원했던 건 사실이고.”

――뭐야 그게……

 


, 엉망진창이야. 레츠의 표정이 괴로운 듯이 일그러져, 어쩔 줄 모르겠다는 듯한 표정을 했다. 고는 그런 레츠에게 다시 다가가 팔을 뻗으려 한다. 레츠는 몸을 딱딱하게 굳힌 채였으나 도망치지는 않는다. 그만 둬, 하고 아까 몇 번이나 들었던 말을 또 중얼거리면서도, 조금 전에 보였던 패기는 없어 보였다. 강하게 거부하지 않는 것은 무슨 이유에서 일까. 이상하다고 생각해서 왜 도망치지 않느냐고 고가 묻자, 레츠는 일단 입을 열었지만 결국 아무것도 말하지 않고 꾹 다물었다. 그 진의가 무엇인지는 고로서는 알 수가 없다. 그리고 이럴 때의 형은, 끈질기게 물어본들 결코 본심을 가르쳐주지는 않을 것이라고도 생각했다.

 


레츠 형. 말을 걸며 눈을 들여다보자 역시 레츠는 괴로워 보였다. 괴로움, 혼란, 망설임, 그리고 약간의 아픔. 표정에서 읽어낼 수 있는 것은 그 정도다. 부탁이니까, 도망치지 말아줘. 그렇게 애원하며 얼굴을 갖다 대자 그는 허용도 거절도 하지 않고 그저 꾹 눈을 감았다. 입술을 겹치는 순간, 쉰 목소리가 고를 부른다. 무언가를 지독하게 후회하고 있는 것 같은 목소리였다.









작중에는 희구하다라고 적혀있는데, 우리나라에선 희구하다라는 말을 거의 쓰지 않아서 갈구로 변경. 둘 다 비슷한 의미.

박리되어 보였다의 박리는 망막박리 할 때의 그 박리. 쉽게 말하면 동떨어져 보였다고 생각하면 된다. 이건 원문의 느낌을 살리기 위해 박리로 밀어붙임.

기억을 헤집다. 이건 너무너무 좋아하는 단언데, 원문을 직역하면 분위기를 살리지 못할 것 같아서, 대체한 단어. 나쁘지 않게 의역했다고 생각하는데, 원문의 馳せていた 이 단어 자체가 먼 곳의 어떤 것을 생각하고 있었다는 뜻이다. 그래서 단순히 멀다고 하지 않고 머나먼이라고 의역.


폭주형제 보신 분들이면 다 아시겠지만, 레츠의 1인칭은 평소에는 보쿠, 고에게는 오레. 고를 부를 때 쓰는 2인칭은 오마에.

당연히 고는 변함없이 오레. 


최대한 원문의 분위기를 살리려고 노력했으나, 일어를 좀 하시는 분이시라면 대사만큼은 원문을 읽어 보셨으면 한다. 

나중에 차차 나올 수위 높은 씬은 원문을 꼭 읽어주세영...ㅠㅠㅠㅠㅠㅠ


속독으로 읽으셨다면 단어 하나하나 보시면서 정독을 꼭 해보셨으면 좋겠다.

시노부님의 글은 한 글자 한 글자 곱씹으며 읽을 때 더 빛이 나고 감회가 새롭다.


이하는 쓰잘 데없는 역자후기






2016. 9. 4. 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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